.이혼소송변호사 연극 100편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진 고인은 아버지를 여읜 날에도 드라마 밤샘 촬영에 매진했다. 어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낸 당일에도 일고의 흔들림도 없이 연극 무대를 지켰다. "배우란 평생 불효하는 직업이다. 시청자,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고인의 말은 여전히 회자된다. 딱 한 차례 연기 외길에서 '외도'를 경험하기도 했다. 고인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훗날 정치를 그만둔 이유로 고인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는 하늘이 파랗고 꽃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고 후회의 심정을 내비쳤다. 삶의 암전(暗轉)을 맞기 전까지 고인은 '최장수 현역 배우'로서 무대를 굳게 지켰다. 상연 시간 3시간20분짜리 희곡 '리어왕'에서 주역 리어왕을 연기했던 고인이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에서 '노왕의 절규'를 재연하자 객석은 눈물로 뒤덮였다. 지난해 말 KBS 드라마 '개소리'로 생애 첫 연기대상을 받은 게 고인의 공식석상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오래 살다보니 이런 날이 왔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고 소감을 밝혔고, 이 소감은 그의 유언이 됐다. 병마는 생명의 빛을 서서히 거둬 가고 있었고, 태산과도 같던 대배우는 '천의 얼굴'로 누빈 인간의 무대를 떠나 하늘의 무대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최희정 씨와 아들 이종혁 씨, 딸 이정은 씨가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 장지는 이천 에덴낙원으로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