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피부관리부지런하고 마음 따순 양동떡에게도 딱 한 가지, 남편 복은 주어지지 않았다. 잘생긴 남편은 늘 집 밖으로만 돌았다. 논일도 밭일도 집안 살림도 다 양동떡 차지였다. 애 다섯을 서울 명문대에 보낸 양동떡은 환갑도 되기 전에 허리가 굽었다. 병원 한 번 가지 않은 덕에 일찌감치 이가 다 빠져 합죽이였다. 볕 잘 드는 겨울, 툇마루에 앉아 반쯤 닳은 놋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 먹던 그이의 모습이 어제인 듯 눈에 선하다. 맘카페바이럴 양동떡을 눈여겨본 건 그 뒤부터였을 것이다. 양동떡은 우리 동네서 유일하게 땅콩 농사를 지었다. 섬진강변 모래투성이 밭이 땅콩 농사에 적격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낸 사람도 양동떡이었다. 언젠가 새참 나르는 동네 아주머니를 따라 나도 땅콩밭에 갔다. 다른 놉들은 한 고랑씩 잡고 땅콩을 심는데 양동떡만 두 고랑을 잡고 일을 하는 중이었다. 새참이 오자마자 놉들은 호미를 집어던진 채 한달음에 달려왔다. 다른 사람이 시원한 콩국수를 다 먹도록 양동떡은 엉덩이를 들썩들썩, 땅콩을 심느라 바빴다. 빨리 오라고 몇번이나 소리친 뒤에야 마지못해 호미를 놓은 양동떡은 땅콩 심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콩국수를 씹지도 않은 채 들이켰다. 늦봄 뙤약볕에 타들어가는 땅콩 모종에 아짐 애간장도 탔을 테지. “근디 아짐. 왜 아짐만 두 고랑을 잡고 일을 한대요?” 자기만 두 고랑 잡고 일하는 걸 알아본 내가 기특했는지 양동떡은 빙긋 웃었다. 그때 들은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누구든 제 일 할 때와 남의 일 할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 남 일은 설렁설렁, 제 일은 후딱후딱 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 심리다. 한 고랑씩 잡고 일을 하면 주인만 앞서 나가게 마련이다. 그럼 뒤처진 일꾼들은 부담을 느낀다. 그렇다고 주인이 일꾼처럼 설렁설렁 일할 수도 없는 노릇, 고육지책으로 양동떡은 옆으로 두 고랑을 잡은 것이다. 일을 두 배로 해도 나아가는 속도는 같아서 일꾼들 부담이 적기 때문이었다. 마음이란 걸 그렇게 쓰는 사람도 있다는 걸 양동떡에게 처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