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실천하는이웃

커뮤니티

고객관리
김 기자는 연재물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PTSD를 얻게 됐는지,
글번호 35935 등록일 2026-04-24
등록자 순방호 조회수 221명
다운로드  

.일산개인회생 김 기자는 연재물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PTSD를 얻게 됐는지, 이후 겪은 감정들은 무엇인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등을 담담히 풀어냈다. 그는 2022년 10월 핼러윈 축제를 취재하다 참사를 목격했다. 사회부 기자로 수많은 사건·사고를 취재했지만 실제 시신을 눈앞에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뺨을 몇 대나 때릴 정도였으니까요. 얼얼한 상태로 취재를 다녔고 그 뒤에 회사 지원으로 병원에도 갔지만 네 번 정도 가고 그만뒀어요. 그땐 특별한 증상이 없었거든요.” 문제가 생긴 건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23년 10월,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였다. 꿈인지, 잠결인지 갑자기 그날 참사 현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PTSD의 전형적 증상, ‘플래시백’이었다. 귀국 후 몇 번 더 같은 증상이 반복되더니 참사 1주기가 다가올수록 불면과 숨 막힘, 헛구역질이 늘었다. “그 시기에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웠고, ‘이태원’이란 단어를 듣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죄책감도 꽤 컸던 것 같아요. 취재가 아니라 심폐소생을 도와야 했지 않나, 그 생각을 계속했어요.” 먼저 변화를 감지한 건 주변 지인들이었다. 그냥 예민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인들은 김 기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강하게 권유했다. 다만 상담과 약물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도 그는 한동안 환자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도, 약봉지도 꼭꼭 숨겼다. 업무 능력을 의심받을까, 더 많이 더 오래 일하고 술자리에도 끝까지 남았다. “세월호 취재기자 관련 연구를 보면 ‘마초적 직업관’이 PTSD 지속과 연결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사실 코로나19 이후로 문화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자들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는데 실은 지속 가능하진 않은 것 같거든요. 어쨌든 우리는 사회의 아픈 면을 써야 하는 사람들인데 강해지기 위해선 결국 우리의 약한 점도 잘 돌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저도 결국 ‘병원에 다니는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연재를 시작하고 나선 부쩍 말을 거는 동료들이 많아졌다. 정신과 치료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다. “제가 원했던 건데, 사실 정신과 얘기를 좀 편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또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제발 병원에 가시라 권유하고 있어요. 이번 연재 목표도 되게 단순합니다. 한 명이라도 더 병원에 보내자. 저는 병원에 간 게 제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해요.”


이전글 생후 8개월 영아 칭얼거린다는 이유로 집어 던지는 등 학대한 60대 돌보미 징역 6개월에 집유 2년
다음글 포장이사 비교, 미리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이유
작성자   비밀번호
자동글 방지     (자동글 방지 기능입니다. 숫자를 정확히 입력해 주세요!)
내용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사랑의열매   엔터소프트   이천시청
사랑을실천하는이웃 사랑을실천하는이웃   경기도 이천시 율면 금율로828번길 198-46
Tel: 031-643-4041  Tel. 033-244-7512  Fax. 031-643-4042
Copyright 2015. 사랑을실천하는이웃 All Rights Reserved.
관리자접속